악비전 - 다나카 요시키 편역


시대는 송조 말기. 금의 사태자 올출 (兀朮)은 대군을 이끌고, 송을 공격한다. 그 당시 간신과 망군이 나라를 어지럽히고 있던 송은 어이없이 패배하고, 결국 수도 개봉을 함락당하고 만다. 결국 송의 황제와 상황(황제의 아버지)는 금에 끌려가고, 살아남은 황족 하나가 남쪽으로 도망쳐 남송을 건국한다. 우쥬의 대군이 남송을 습격하러 장강을 건너지만, 의형제와 동료들을 이끄는 악비에게 연전연패, 금국의 오십만 대군은 궤멸당한다.
하지만 악비는 금과 밀약을 맺은 간신 진회에게 모살당하고, 살아남은 악가의 둘째 아들 악뢰는 아버지의 동료들과 새로운 동료들을 모아 악가군을 재건하려 하는데...

 우리에게 있어 친숙한 중국 소설이라고 하면, 고전으로는 서유기, 수호지, 삼국지, 근대라고 하면 김용 등의 무협 소설이 있을 것이다.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하고 대중적인 작품은 역시 삼국지일 터. 삼국지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의해 평역되고, 연구되고, 즐겨져 왔다. 위 오 촉 세 개의 세력들 속의 많은 장수들과 모사들의 무용/지략전은 중국 소설 중의 으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니,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지만 중국 매니아인 다나카 요시키에는 중국 소설하면 무조건 삼국지를 떠올리는 일본의 세태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듯 하다. 실제로, 삼국지는 가장 대중적인 작품이기는 하나, 아직 일본에 알려지지 않은 작품 속에서도 훌륭한 작품은 많고, 의외로 중국 사람들은 삼국지 이외에도 그 다른 작품들을 향유하면서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확실히 중국인들에게 있어 최고의 히어로, 거대한 적과 맞서 싸우고, 또 비극성까지 갖추고 있는, 정충보국(精忠保國)으로 대표되는 영웅성으로 민중들에게 어필되는 인물은 바로 악비(岳飛)다. 좀 빈약한 증거이긴 하지만, 김용의 최고 인기 작품 ‘사조영웅전’ ‘신조협려’ ‘의천도룡기’ 에서도 악비가 중요한 인물로 등장하는 등, 그 영향력은 상당히 지대하다.

 은근히 누군가가 소개해 주기를 기다렸던 (자신이 쓰기는 귀찮으니까;) 다나카 요시키가 결국 자신의 손으로 악비를 소개하기로 한 것이다. ‘설악비전’ ‘정충연의’ ‘송사’ ‘악비소전’ 등의 중국 자료를 편집/번역하여, ‘악비전’이라는 작품으로 내놓은 것이다. 어디까지나 ‘편역’인 만큼, 다나카 요시키의 소설가로써의 역량은 최소한도로 자제되어 있다.
우리가 중국 소설하면 얼핏 떠올리는 이미지들, 그러니까 주인공의 설화적인 태생, 남자들끼리의 의기투합, 의와 협, 무장들끼리의 일기토, 도술과 도술의 격돌 등등이 총망라되어 있고, 또 그 조합이 상당히 재미있게 진행되어 간다. 짧은 1회로 구분되어진 이야기는, 마치 이야기꾼이 사람들을 상대로 재미있게 설을 풀어대는 것처럼 구성되어 있고 (한 회의 마지막에는 ‘이제 어떻게 될 것인가, 그것은 다음회의 즐거움.’이라는 말이 꼭 들어가 있다), 각 회마다 기승전결이 있고, 또 그 한 회들이 모여서 커다란 흐름을 만들어서, 상당히 재미있게 읽을 수가 있었다.
굳이 삼국지와 비교하자면, 현실적인 맛은 조금 떨어지는 듯도 하지만(뭐 그래도 삼국지연의에서 ‘도술’의 비중이 결코 작은 것이 아니긴 하지만) 오히려 드라마성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이 작품은 삼국지에 비해 결코 꿀리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송과 금이라는 두 개의 세력다툼이 가장 큰 흐름이지만, 그 와중에 각지의 반란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등장하는 많은 영웅들도 상당히 매력있게 등장한다. 그 중, 이 작품의 가장 큰 감상 포인트인 우고(牛皐). 악비의 의형제 중 하나로서, ‘악비전’에서의 또 하나의 주인공이라고 생각되어지는 인물이다. 주인공이 차분하고 인덕이 있는 캐릭터일 때, 들어가지 않으면 섭섭한, 삼국지의 장비같은 캐릭터인데, 오히려 캐릭터로서의 매력은 장비보다도, 삼국지나 수호지의 어떤 캐릭터보다도 높다고 생각된다. 강하기는 하지만 일기토를 할 때마다 져서 도망가고, 도망가는 우고를 병사들이 활을 쏴서 구해주고, 오히려 그 병사들에게 고마워하면서 하나의 전법으로 승화시키고; 그러면서도 천운은 엄청 강해서 악비의 위기를 여러 번 구해주기까지 한다. 악비를 푸대접하는 황제에게 면전에서 ‘에이 이 바보 황제야’라고 구원요청을 거절하고 (결국 악비가 황권을 위협하는 존재로 죽임을 당한다는 점에서 생각해 본다면, 이 사건에서부터 결국 모든 게 시작된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하지만), 결국 악비의 숙적 올출을 맨주먹으로 때려 죽이는 등, 중국 서민들의 울분을 풀어주는 캐릭터 성을 가지고 있다. 지금도 ‘민중의 영웅’이라고 하면 우고의 이름을 꼽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다나카 요시키도 한 인터뷰에서 우고에게서 많은 캐릭터성을 가져왔다고 했는데, 이 우고라는 캐릭터가 없었다면, 악비전은 그저 우울한 이야기가 되고, 이렇게 다시 햇빛을 보는 일은 없었을 지도 모른다.

코단샤 노벨스 다섯권으로 이루어져 있고, (중앙공론사에서 나온 단행본판은 네 권, 사실은 이쪽이 더 갖고 싶었다), 꽤 얇은 편이라 한 권 한 권은 빠르게 읽을 수 있었다 (도중에 딴 책을 읽어서 그렇지;) 이야기 자체로도 상당히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고, ‘영웅문’ 3부작을 재미있게 읽은 사람도, ‘칠협오의’를 좋아하는 사람도, 다나카 요시키의 작품 세계를 더 깊게 이해하고 싶은 사람도, 삼국지나 수호지 이외의 중국 소설도 읽어보고 싶은 사람도, 전부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by Gunner | 2007/03/01 11:14 | 독서 | 트랙백 | 덧글(2)

트랙백 주소 : http://Lazytorun.egloos.com/tb/1518853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Commented by 정의권 at 2013/02/01 13:52
번역이 되었는지요?
궁금해서 연락드립니다.
Commented by Gunner at 2013/03/14 10:50
아직 번역은 되지 않았습니다...
된다는 이야기도 딱히 들려오지는 않습니다...

:         :

:

비공개 덧글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