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가미 자매의 나는 교실 / 아이들 화낸다화낸다화낸다 - 사토 유야


<카가미 자매의 나는 교실>
누구라도 365일 중의 하루로 끝날 예정이었던 6월 6일.
카가미가의 셋째 딸, 카가미 사나는 돌연한 대지진에 조우한다.
액체화된 대지에 빨려들어가는 교사를 뒤덮은 암흑의 색은,
살아남은 생도들의 마음을 광기 일색으로 물들여 나간다.


<아이들 화낸다화낸다화낸다>
과거의 주박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전교한 칸다의 초등학교에서는, 기묘한 놀이가 유행하고 있었다.
“우남(牛男)”이라고 불리는 엽기연속살인귀의, 다음의 범행을 예상하려는 것.
단순한 놀이였을 터의 게임은 순식간에 에스칼레이트하여,
아이들도 다짜고짜 당사자가 되어 간다-
신세대 문학의 선봉이 그려내는, 용서 없는 현실과 그 미래.
보너스 트랙으로서 새로 쓰인 두 편을 수록.


 바로 얼마 전에 <플리커 스타일>을 다시 한 번 읽었다. 읽고 나서 새삼스럽게 생각하는 건, <플리커 스타일>만으로 사토 유야의 현재 모습을 평가하는 것은 상당히 안타까운 일이라는 점이다. 확실히 <플리커 스타일>은 너무나 러프한 모습을 하고 있어서 주목되는 점은 그 뿌리깊은 증오와, 선정적인 소재, 그리고 난무하는 기호들 정도였지만, 그 이후의 작품에서 점차 크게 발전해 나가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 러프한 모습도 좋아했는데, 현재의 사토 유야는 아마도 <플리커 스타일>과 같은 작품은 다시 쓸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에너지 만큼은 강렬한 작품이었고, 그 에너지가 오오츠카 에이지나 노리즈키 린타로, 카도노 코우헤이 등에게 주목받았던 점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다.

 여하튼간 차차 다음 작품들을 발표하면서, 명확한 인식 없이 그저 사방에 뿌려지기만 했던 증오는 점차 방향성을 잡아 갔고, 기호에 묻혀 희미해졌던 주제의식은 그 밀도를 더해 갔다. 특히, 카가미 가 시리즈 3편 <수몰 피아노>에서부터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확립하는 데 성공한 듯 하다. 하지만 세일즈 면에서는 실패. 절망한 사토 유야는 카가미 가 시리즈 마지막 편이라고 선언한 (하지만 후속작 <나인 스토리즈>를 발표하고 있다고 한다) <크리스마스 테롤>에서 독자들에 대한 독기를 잔뜩 뿜어낸 (=삐진) 후, 순문학지로 시프트하며 여러 작품을 발표한다.

 그 와중 2005년에, 사토 유야는 두 편의 책을 출간하는데, 코단샤 웹에서 연재한 것을 모은 <카가미 자매의 나는 교실>, 그리고 <군조>에 발표한 단편을 모은 <아이들 화낸다화낸다화낸다>의 두 작품이다. 이 두 작품에서는 사토 유야가 일종의 터닝 포인트였던 <크리스마스 테롤> 이후로 변화한, 공통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되기에 두 편을 한꺼번에 다루기로 한다.


 <카가미 자매의 나는 교실>역시, 기본적으로는 종래의 카가미 가 사가와 비슷한 전개를 보인다. 여러 캐릭터들의 시점을 번갈아가면서 서술하고, 종래에는 그 캐릭터들이 한꺼번에 모여서 사건이 풀려가는 구성은 상당히 익숙한 편이다. 이번 편에서는 장소가 땅속에 묻힌 학교, 한정된 장소이니 만큼 캐릭터들이 서로 교차하는 빈도가 높긴 하나, 기본적으로는 화자 역할을 맡은 캐릭터들이 외부에 대해 ‘닫혀 있다’는 점-어디까지나 그 캐릭터의 기본 틀에 갇혀 나오기 힘들어한다는 점-은 기존 작품의 캐릭터들과 상당히 흡사하다.


 또 하나 주목할 만한 포인트는 ‘예외편’에도 어김없이 등장하는 케토인 히로유키. 이 시리즈를 읽다 보면 진정한 주인공은 이 케토인 히로유키가 아닐까 생각할 때도 있는데, 이 캐릭터는 그야말로 시리즈 전체에 걸친 최고의 악역, 카가미가를 끊임없이 이용하고 불행을 가져다 주는 캐릭터이다. 그런 가해자 측의 캐릭터였던 그가, ‘예외편’인 본 작품에서 계속 실패하고 망가지는 모습을 보는 게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가져다 주기도 한다는 점이다.

 그 이외에도, 오직 오빠밖에 모르는 것처럼 보이는 메인 주인공 카가미 사나의 변화를 보는 것도 상당한 재미. 이런 건전 노선으로 나가는 것도 상당히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아이들 화낸다화낸다화낸다>는, 문예지 <군조>에 실었던 단편들을 모은 단행본이다. 이 작품집에서 사토 유야는 보다 직접적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사토 유야의 감성 중 하나는 사춘기적 분노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저번에 했던 포스팅에서도 언급했듯이, 성장한다는 것은 현실과 자신의 한계를 알아간다는 것이 아닐까라고 했었다. 자신이 무얼 할 수 없는지 안다는 건 바로 자신의 미래의 가능성이 줄어간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느끼는 고통, 그리고 그 고통을 안겨주는 현실의 가학성에 대한 분노를 표현하기 위해서 사토 유야는 현실의 혹독함에 가장 무방비한 존재인 ‘아이들’을 제시한다.


 이 ‘아이들’이란 개념은 비단 나이가 어린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현실이 차가운 모습을 드러냈을 때, 그 현실에 어떻게 대항하면 좋을지 몰라 무방비하게 당할 수 밖에 없는 존재들을 가리킨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표제작인 <아이들…>에서는, 화자 뿐만이 아니라 화자의 주변 아이들 또한 ‘어른들’로 대표되는 현실에 학대받고 있었다. <시체와,>에서는 병으로 고통스럽게 죽은 소녀의 시체가 어떻게 타인에게 훼손되어 가는지를 담담하게 묘사하고, <태어나 줘서 고마워!>에서는 갑자기 눈 속에 묻힌 아이, <리카 짱 인형>에서는 부모와 학우들에게 이지메를 당하는 소녀를 내세워 그들의 고통을 잔인할 정도로 세밀하게 묘사한다.


 이 단편들 중 가장 특기할 만한 작품은 <욕망>이라는 작품이다.
수업 중의 학교에서, 돌연 네 명의 아이들이 일어나 총기를 난사하기 시작한다. 학교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고, 테러리스트가 된 아이들은 경찰과 대치하는데, 선생님인 ‘나’는 순식간에 일어난 참극에 아연해하면서도, 총기를 난사하는 아이들과 대화하기 위해서 안간힘을 쓴다.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이 잔혹한 현실을 자신의 레벨로 끌어들이기 위해서, ‘나’는 아이들이 이와 같은 일을 저지른 이유를 밝혀내려고 하지만, 아이들은 아무런 이유도 없다고 딱 잘라 말한다. 아무 이유도 없다는 그 진실을 마침내 이해한 순간 ‘나’는 절망에 빠지게 되는데, 이 단편에서 ‘아이들’의 역할을 이번에는 어른이 맡았다고 하는 점이 상당히 괜찮게 느껴졌다.

 같은 인간이지만, 결국 타인이기에 100퍼센트 이해할 수는 없고 (그러니까 연인들도 허구헌 날 싸우는 거다), 그 이해할 수 없는 갭이 비약적으로 키워진 모습을 사토 유야는 독자들에게 들이댐으로써, 결국 ‘현실’의 레벨이 너무나 높다면, 그 잔혹한 현실 앞에서는 어른도 아이가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앞서 이야기했었는데, 사토 유야는 이제 <플리커 스타일>과 같은 작품을 쓸 수 없다고 했었다. 미래에는 절망밖에 없다고 단언했던 그도, 조금씩은 밝은 미래를 이야기하기 시작하는데, 이 두 작품집에서 그런 모습이 차차 드러나기 시작한다.


 <카가미 자매의…>에서는 학교에서 탈출하기 위해 서로 갈등을 거듭했던 캐릭터들이 힘을 모은다. 서로 힘을 모아서 탈출 계획을 짜는 모습은 마치 청춘 소설과도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엄밀히 말하면 이것도 청춘소설일 터이지만). <아이들…>에서는 마지막 작품이었던 <리카짱 인형>이라는 단편이 이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는데, 집에서는 아버지와 언니에게 얻어맞고, 학교에서는 이지메당하며, 거리에서는 성폭행까지 당하면서, 자신을 인형화 시켜 고통에 무감각해지려 했던 소녀는, 마침내 자신 앞에 놓인 현실과 싸워나가기 시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물론, <카가미…>에서는 탈출에는 성공하나 희생이 너무나 컸고, <리카짱 인형>에서는 소녀의 미래는 너무나도 불투명하다. 하지만 원래 삶이 그런거 아닌가. 한 가지 문제를 해결한다고 해서 앞으로의 인생 전체가 나아진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이 두 작품에서, 앞에 놓인 현실과 싸워 나가는 모습을 보여준 것만으로도 충분히 따뜻함이 느껴져서 좋았다.


 근친;;으로 대표되는 선정적인 소재를 즐겨 쓰는 탓에 (임달영이 떠오른다), 우리나라에서 대중적으로 받아들여질 만한 작가는 아닌 듯 싶다 (이건 마이죠도 마찬가지겠지만). 하지만 사토 유야는 현실을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작가이고, 그 이야기 역시 한번 음미할 만한 가치는 충분한 이야기들이다. 

 개인적으로는 처음의 그 끝도 없는 절망과 증오의 분위기가 약해진 것 같아 아쉬운 느낌이 들지만, 뭐 소년은 성장하기 마련이고, 또 조금은 둥글둥글해지는 것도 좋겠지.
 라이센스가 되어 나온다면, 이미 국내에 정착된 사토 유야에 대한 오해를 풀기에는 충분한 작품들이 아닐까 싶다;;
 그러니까 결론은 상당히 재미있는 독서였다는 얘기.

by Gunner | 2007/06/19 13:35 | 독서 | 트랙백 | 덧글(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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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Laika_09 at 2007/06/19 20:21
기대되네요. 국내에 들어오는 건 아마 카가미 가 이야기가 테롤까지 다 정발되고 나서의 일이 될 것 같지만요.
Commented by Gunner at 2007/06/20 16:08
확실히 판권이 거의 전부 한 출판사가 쥐고 있다는 건, 기다리는 사람 입장에서는 좀 곤란하긴 합니다;; 사토 유야 만이 아니라 다른 작가들도 같이 커버하려면, 나오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습니다-_-;; 어쩔수 없죠. 기다리는 수밖에요^^
Commented at 2007/06/22 13:55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Gunner at 2007/06/22 23:20
축하드립니다. 도그라 마그라는 읽어보고 싶기는 한데 (도그라 마그라 만이 아니라 다른 4대 기서들도 읽어보고 싶긴 합니다) 웬지 머리만 아파질 것 같아서 보류를 해 두고 있습니다.
파우스트에 실린 카가미 가 단편들도 보고 싶어집니다만 (이게 그 <나인 스토리즈>인가요?) 일단은 국내판 파우스트에도 실릴 것 같아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일본판과 국내판 파우스트 둘다 보면 웬지 정신이 헷깔릴 것 같아요.
오듀본의 기도, 한번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추천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라블루걸 at 2007/09/22 10:10
오오 사토 유야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는군요. <크리스마스테롤>이 그런 내용이었던게 그런 이유였군요. 후후. 저 역시 <수몰 피아노>가 제일 좋았습니다. <에나멜 혼>도 괜찮았군요.

Commented by Gunner at 2007/09/23 23:06
슬슬 카가미 신간이 나와줘야하지 않나...하는 생각이 들고 있습니다.
<나인 스토리즈>가 너무나 기대되는군요.
Commented by lalala ra? at 2011/08/16 22:23
독자들에 대한 독기를 잔뜩 뿜어낸 (=삐진) << 이 부분에서 뿜었어요.
번역작업이 쉬운일이 아니라는건 이해하지만 독자입장에선 아무래도 답답할수밖에 없나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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