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 이야기 - 모리미 도미히코

여우 이야기
모리미 도미히코 지음, 이영미 옮김 / 문학수첩북앳북스
나의 점수 : ★★★★★

21세기의 문사가 쓴,
너무나도 정통적이고
너무나도 서늘한 기담집.

 <태양의 탑>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등등의 혼과 땀이 살아 있는 작품들로, 나의 하트와 양심을 사정없이 찔렀던 모리미 토미히코가 기담집으로 돌아왔다. <유정천 가족> 시리즈와 이 책은 아직 원서로 구입을 하지 못하여서 벼르고 있었는데, 서점에 가 보니 나와 있었다. 모리미가 우리나라에서도 입소문을 타고 있었는지 아니면 출판사의 섣부른 대시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여하튼 보고 싶었던 작품이 일찍 번역되어 나오는 것은 즐겁고, 또 이제는 일본과 우리나라의 취향 혹은 트렌드가 점차 일치함을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책 정보를 처음 들었을 때부터 모리미에게 잘 어울리는 장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기담 혹은 괴담이라는 장르는, 그것이 글이라는 매체를 통해 접할 경우에는 문체가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부메의 여름>을 처음 읽으면서 스산함을 느꼈던 것은 쿄고쿠 나츠히코의 문체가 상당히 간결하면서도, 과거의 일본어와 한자어를 효과적으로 사용하면서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냈기 때문이다. 
 허풍이 세지만 결코 고결함을 잃지 않는 듯한 (내용은 차치하고) 작가적이라기보다는 문사(文士)적인 모리미의 문체는 그와 같은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만들어내기에 효과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달려라 메로스>에 수록된 작품 중 한 편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 고풍스러운 문체는 기괴하고 신비한 소재와 결합했을 때에는 매우 신비스러운 작품을 탄생시킨다. 그리고 그 단편과, 본 책의 단편 몇 작품은 애절하기까지 했다.
 묘사도 효과적이었다고 생각한다. 그 전 작품에서도 느꼈던 것이지만, 모리미는 없는 단어를 만들어내서로라도 독자에게 그 촉감을 전달한다 (확실히 번역하면서 그 느낌들은 좀 약해지지 않았나 싶긴 하지만) 요새 젊은 작가들 중에서는 모리미가 이런 묘사 능력에 있어서는 가장 수준이 높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다지 많이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본 작품을 읽으면서 느꼈던 서늘함의 대부분은 문체에 의거하지 않았나 싶다.

 모두 다 드러내기 보다는 애매하게 끝을 맺고, 마지막에는 애절하게 느껴지는 네 편의 단편들은 메타 레벨로 엮여 있다. 메타 픽션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이 책을 읽고 다른 작품과의 연관성을 상상해 보는 재미도 있을 듯하다. <달려라 메로스>와 <밤이 짧아...>는 연결이 되고, <다다미 넉장 반>과 위의 두 작품 역시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는데, 이 작품도 어찌어찌 연결이 되지 않을까 싶다. <태양의 탑>은 아쉽게도 연관성을 찾지 못했는데, 언제고 올스타 캐스트 작품이 나올 것 같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시카마와 메노의 팬;;

 훌륭한 기담집. 21세기에 이런 정통 기담집을 낼 수 있다니, 모리미의 장래가 더욱 기대된다.

by Gunner | 2009/07/14 22:09 | 독서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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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雅人知吾 at 2010/01/09 15:38
우부메의 여름은 영화로 봐야지...하면서 벼르고 있읍니다.
링크 신고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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